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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 개정안, 고용주에 일방적 유리”
노조-야당지지기반 약화 ‘일석이조’ 효과
AIRC 부당해고법 폐지 등 ‘기업위주’ 노골화
하워드 정부의 전면적인 노동법 개정안이 요즘 호주사회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호주의 노사관계 개혁은 지난 20여년부터 전반적인 경제개혁정책(economic reforms)의 일환으로 추진되어 오면서 93년 (노동당 정부)과 96년 (현 보수연립정부)에 두번의 소폭 개혁이 있었기에 새삼스러운 이슈는 아니다. 법개정 추진은 하워드 수상이 4기 연속집권에 성공한 직후부터 예견돼 왔다. 그러나 이번에 연방정부가 강력히 밀어부치고 있는 노사관계 개혁안은 그 내용과 심각성에서 종전과는 차원이 전혀 다르다. 한마디로 호주경제의 한 기둥인 노조를 제도적으로 무장해제시킴으로써 근로자 보다는 기업에게 전반적으로 유리한 고용풍토를 조성하겠다는 발상이다.
이와 관련, 향후 노조와 야당의 반발과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견된다. 그러나 하워드 정부는 연방 상하양원을 모두 장악하고 있는 호기(好機)를 이용하여 수단 방법을 총동원해 노동법 개정 목표를 관철시킨다는 로드맵을 설정하고 법안 통과를 강력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이미 막대한 예산으로 대국민 홍보전에 착수하는 등 여론몰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마크 래이섬 전 야당당수의 폭로회고록으로 노동당이 곤욕을 치루면서 인기가 곤두박질한 현 시점을 택해 노조와 야당을 상대로 진검 승부의 칼을 빼 들었다.
연방정부의 노사관계개혁안은 예상한대로 대기업을 위시한 고용주측을 지지하는 연립내각과 근로자의 권익을 옹호하는 노동당-노조로 갈린 채 완전히 상반된 (찬반)입장을 보이고 있다. 근로자 권익 약화를 우려하여 군소정당및 무소속의원들과 성공회, 가톨릭 등 일부 교회권에서도 반대 시각을 나타내고 있다. 아직 세부 개정안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논란이 될 사안은 노사관계협상에서 정부와 노조 등 이른바 삼자의 개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여 고용주와 근로자가 직접적인 개별교섭(enterprise bargaining)를 통해 임금및 고용조건을 협상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이다. 또한 산별노조의 개입이 가능한 임금협상및 근로조건 등 단체교섭(collect bargaining)에서도 노조의 영향력을 최소한으로 제한하는 것도 주요 사항이다. 즉, 하워드 정부는 노조의 개입을 제도적으로 제한하여 족쇄를 채운 상태에서 ‘노(勞)와 사(使)’측의 직접 교섭으로 임금인상, 최저임금, 근무시간, 노동조건, 노사분쟁및 해고, 휴가 병가 연가혜택 등 모든 노사관련 이슈를 ‘협약’하도록 고용관계의 전면 개정을 추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노사문제에서 일종의 심판(조정관) 역할을 해온 호주노사관계위원회(AIRC)도 축소 또는 폐지되며 공정급여커미션(Fair Pay Commission)을 신설하여 업종별 최저임금 등 종전의 AIRC 역할을 관장하도록 조정된다. 아울러 법악용 소지가 많아 고용주측의 심한 반발을 불러온 부당해고법(Unfair Dismissal Law)도 전면 손질될 예정이다.
이번 개정안 추진에서 중요한 논점은 노사관계에서 하워드 정부가 노조 개입없는 당사자간의 직접 교섭을 통해 고용주와 근로자의 이익을 확대하고 노동시장 생산성을 높이자는 명분을 내세워 법개정을 밀어부친다는 점이다. 노동시장에서 이해관계가 가장 분명한 고용주와 근로자의 직접 협상으로 노사문제가 종결되고 노조의 개입이 최소화될수록 고용부문의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것이 정부의 논리다. 뉴라이트(신자유주의) 경제논리에 입각한 이론상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고용불안 속에 근무시간이 증가하는 추세에서 과연 근로자의 몇 퍼센트가 고용주를 상대로 한 고용협상에서 실제로 교섭권(bargaining power)을 적정당당히 행사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특히 대기업이나 공기업인 경우 눈치를 보지않고 정당하게 근로자의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직장인은 일부 전문직및 간부직급 등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지난 10여년 사이 산업패턴의 변화로 임시직(part-time & casual employees)과 계약직(contractors)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에서 일자리 보전에 급급하는 비정규직 (단순 기술직, 비숙련직 등) 근로자의 경우 고용협상에서 고용주에 일방적으로 끌려갈 것은 명약관화한 실정이다. 현재도 상당수 기업들이 임원급이 아닌 일반 근로자들에게 고용계약서를 내밀며 “서명하던지 싫으면 말고(take it or leave it)”하는 일방적인 횡포를 부리고 있다. 소규모 자영업과 중소업체 근무자가 많은 한인 이민자들의 경우 법개정 이후에는 현재 보다 불이익을 당하는 사례가 더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따라서 법개정으로 AIRC가 폐지되고 근로자의 권익 보호역할을 하는 노조의 개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의도는 심판없는 싸움터에 방패없이 나가 중무장한 고용주를 상대로 싸우라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한마디로 호주가 자랑하는 ‘a fair go(공명 정대한 시도)’ 정신에 위배되며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논리’에 기초한 미국식 노사관계를 답습하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하워드수상의 노동법 개정안은 경제및 고용논리를 벗어나 다분히 정치적인 목적도 내포하고 있다. 현재 직장인 중 노조가입율이 20%선에도 못 미치는 저조한 상태다. 이 상황에서 새 노동법이 시행되면 직접 개별협상으로 노조의 힘은 더욱 약화될 것이고 근로자를 노조의 영향력에서 분리시킴으로써 야당인 노동당의 지지기반을 약화시키는 이른바 ‘두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정치전략이 노동법 개정에 담겨있다.
현재 대다수의 평범한 호주국민들은 고유가와 주택융자 상환부담 가중 등 경제적 이중고 외에 테러위험및 세계 곳곳의 재난재해 등으로 불안감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하워드 정부가 노동법 개정의 무리수를 고집할 경우 경제논리 보다는 당리당략에 급급하다는 비난 외에 범국민적 저항 등 심각한 사회적 ‘안티’연대에 봉착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여러 국내외 이슈에서 제 구실 못하며 무기력증에 빠진 노동당이 심기일전하여 노사관계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대안(정책)을 마련해 노조와 더불어 이번에야 말로 ‘뭔가를 확실히’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호주동아일보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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